
이 공간의 운영자였던 필자는 폐점 뒤 문을 나오는 마지막 날 한참 사업장의 외관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3년 3개월의 순간 순간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쉬웠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고통스럽지만 담대 했고, 실패했지만 당당했다.
여러 ‘카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적자운영’이 어쩜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였고, 그 자존심이 3년 3개월을 버티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사업 1년차 호수공원 미개방으로 초기 입점했던 대다수의 상인들이 문을 닫고 떠난 상황속에 코로나와 지속되는 상권의 공실화, 슬럼화로 현실적으로 이곳에서의 사업성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주변의 많은 만류에도 계속적인 투자로 악착같이 버티고자 했던 나의 결정이 그저 한 청년사업가의 미숙함이었는지, 무능함이었는지, 대담함이었는지는 아직 나 스스로도 판단하지 못하겠다.
어쩜 지금의 기록이 언젠가 지난 3년 3개월의 순간을 되돌아봐야 하는 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만, 지난 3년 3개월은 나의 초심을 한참 뛰어넘을 정도로 치열했고, 절박했고, 처절했다.
은계호수공원 개방에 맞춰 입점했던 수많은 상점들이 공원 개방이 1년 넘게 지연되자 거의 다 떠났을 때, 살아있는 상권내 상점들을 돌며 상인회를 조직해 LH공사를 향해 싸우며 공원 개방을 이끌었던 순간, 매주 지자체 관련 부서를 만나며 상권내 활성화사업 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순간, ‘세계커피콩축제’를 개최하면서 준비했던 시간 등 정말 쉼이 없는 치열함 속에서 살았다.
오죽했으면 공무원들이 나를 ‘사나운 민원인’으로 인식했을까?
내가 이곳에 사업을 하러 왔는지, 상권활성화를 하러 왔는지 스스로 자문을 하며 헛웃음을 지은 기억이 난다. 내가 판단했던 은계호수공원 상권은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아 생명을 심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나의 사업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실행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나에게 다시 이 공간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것이라 말할 것 같다. 물론 시간을 되돌려 무엇인가를 바꿔본다 한들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며, 많은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매우 긴 호흡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싶었고, 나의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속에 있었던 것이다. 희망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폐점을 한 뒤, 늘 상 있었던 음해의 말들을 들었다. 나의 실패는 다른 누군가의 실패와는 다른 잣대로 평가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해와 조롱에 크게 반응하지 않아왔던 것은 아직은 지금의 실패가 주는 고통의 크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그런 음해에 반응할 여유가 없다.
물론 선을 넘은 음해에 대해서는 주변 조언을 받아들여 분명한 법적 조치를 진행했다. 이런 음해들에 대해 반응해 주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지만 가끔은 매를 들어야 질서가 유지 될 때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의 실패를 애써 모르는 척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했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10년차 커피디렉터(커피와 공간에 콘텐츠를 담는 직업)로 일하면서 대담하게 시도했던 커피문화 기반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커피 시장 현장에서, 커피학계에서 일하면서 구축했던 국내외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모든 커피산업이 연결되는 커피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었고, 나아가 커피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어쩜 그래서 더 절실했을 수 있다.
많은 고민을 하다 최근 서울에 있던 커피연구소를 은계호수공원 상권에 이전했다. 앞으로의 상권활성화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던 100여명의 상인회원분들에게 상권을 떠나지 않았음을 전달했다. 비록 이곳에서의 첫 사업은 실패로 끝났지만, 나는 이곳에 남아 언제나 그랬듯 활성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상가공실의 심각성은 이곳 상권의 문제만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다. 결국 모두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며, 그 시간을 견디며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하며 열매가 자라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당분간은 연구소에서 긴 회복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대학 강의를 준비하고, 계속 미뤘던 커피책을 완성하고, 커피 연구를 하고 싶다. 동시에 커피를 기반으로 공공이익을 만들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커피 기고도 계속될 것이다.
세계커피콩축제 개최 지속 여부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현재 너무 지친 상황이라 대답을 피해왔다. 나는 이 축제가 지속되길 바라고, 무엇보다 그 가치가 지켜지고 더 발전되길 바란다. 이제 한 개인의 능력으로 본 축제를 감당하기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무엇보다 이 축제가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되지 않길 바라며, 이 축제가 지향하는 도시 시흥과 세계커피산지국가 대사관 사이의 국제적 교류가 지속되고, 세계커피농장들과 진실된 커피를 하는 국내외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지역의 로컬카페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큰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더 단단한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세계커피콩축제를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쓴이: 김경민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커피학 석사를 받았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와 아마츄어작업실 대표, 세계커피연구소 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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