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김경민] 커피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바리스타는 로스터가 되고 싶고, 로스터는 커피 농장주가 되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직업적 성장에 관한 말처럼 들린다. 바리스타가 로스팅을 배우고, 로스터가 더 큰 사업을 위해 농장을 꿈꾼다는 뜻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 안에는 단순한 직업 이동을 넘어선 욕망이 있다. 눈앞의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 결과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다.
바리스타는 완성된 원두를 한 잔의 커피로 표현한다. 물의 온도와 분쇄도, 추출 시간과 비율을 조절하며 커피가 손님에게 도달하기 전 마지막 순간을 책임진다. 그러나 커피를 오래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 원두는 왜 이런 맛을 내는가.”
“어떻게 볶였기에 이런 향과 단맛이 나타나는가.”
그 질문이 바리스타를 로스팅의 세계로 이끈다.
로스터는 생두에 열을 가해 그 안에 숨어 있는 향과 맛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같은 생두라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커피가 된다. 어떤 로스터는 꽃과 과일의 향을 살리고, 어떤 로스터는 단맛과 묵직한 질감을 강조한다.
그래서 로스팅은 단순한 열처리가 아니다. 생두를 읽고, 그 가능성을 발견해 하나의 향미로 표현하는 해석의 과정이다.
하지만 로스터도 오래 볶다 보면 다시 질문하게 된다.
“이 생두는 왜 이런 성질을 지녔을까.”
“이 향미는 로스팅이 만든 것인가, 생두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인가.”
“이 생두는 어떤 땅과 기후를 통과해 여기까지 왔는가.”
로스터의 관심은 결국 열 이전의 세계로 향한다. 생두를 이해하기 위해 농장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생두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가 아니다. 커피나무에 열린 열매의 씨앗이다. 햇빛과 비, 바람과 토양을 받아 자란 하나의 생명이다.
어떤 고도에서 자랐는지, 낮과 밤의 기온 차이는 어떠했는지, 토양은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열매는 얼마나 잘 익었는지, 수확 뒤 어떤 방식으로 발효되고 건조되었는지에 따라 생두의 성격은 달라진다.
로스터는 열을 통해 그 흔적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생두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는 없다. 결국 커피의 맛은 로스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이전, 커피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로스터가 농장을 꿈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큰 사업을 하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커피의 결과를 다루는 데서 벗어나, 그 결과가 시작되는 지점에 가까이 가고 싶은 것이다.

이 흐름은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셰프는 레스토랑의 정해진 메뉴와 반복되는 운영 방식 안에 갇혀 살아간다. 그는 좋은 요리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재료로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지 못한다.
결국 그는 레스토랑을 떠나 푸드트럭을 타고 길 위로 나선다. 지역을 이동하며 그곳의 재료와 문화, 사람을 만나고, 눈앞의 재료가 가장 잘 살아날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푸드트럭이라는 형식이 아니다. 그가 요리의 본질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권위나 정해진 매뉴얼이 아니라, 재료와 불, 손과 감각으로 돌아간 것이다.
좋은 셰프는 재료를 자신의 기술로 덮지 않는다. 재료가 가진 가능성을 가장 좋은 형태로 드러낸다. 좋은 로스터도 마찬가지다. 생두에 자신의 기술을 과시하기보다 생두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려 한다. 요리의 본질이 좋은 재료에서 시작되듯, 커피의 본질도 좋은 생두에서 출발한다.
매뉴얼은 필요하다. 레스토랑에는 표준 조리법이 필요하고, 카페에는 추출 레시피가 필요하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준과 반복이 중요하다. 그러나 매뉴얼이 모든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요리와 커피는 살아 있는 재료가 아니라, 똑같은 결과를 생산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뀐다.
살아 있는 재료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생두는 해마다 달라지고, 수확과 가공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 로스팅된 원두도 시간과 온도, 습도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매뉴얼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매뉴얼 너머의 생두를 볼 수 있는 감각을 갖는 일이다.
바리스타에서 로스터로, 로스터에서 농장으로 향하는 이동은 직업의 서열을 뜻하지 않는다. 추출보다 로스팅이 더 위에 있고, 로스팅보다 농업이 더 높은 단계라는 의미도 아니다.
이 이동은 커피를 사랑할수록 그 커피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한 잔을 추출하다 보면 원두가 궁금해지고, 원두를 볶다 보면 생두가 궁금해진다. 생두를 바라보다 보면 나무와 땅, 기후와 농부가 궁금해진다.
현대 커피가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시선의 이동을 의미한다. 과거의 커피가 완성된 상품으로 소비되었다면, 현대 커피는 그 커피가 생산된 지역과 농장, 품종과 고도, 수확 시기와 가공 방식까지 함께 바라본다. 커피를 획일적인 상품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생명과 장소의 결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커피는 바리스타의 손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바리스타의 손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추출 이전에 좋은 로스팅이 필요하고, 좋은 로스팅 이전에는 좋은 생두가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생두 이전에는 건강한 커피나무와 적절한 환경, 잘 익은 열매와 세심한 수확, 정교한 가공이 필요하다.
다만 본질에 다가간다는 말을 농장만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좋은 생두도 잘못 볶으면 가능성이 사라지고, 잘 볶은 원두도 잘못 추출하면 충분한 향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본질은 어느 한 단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배와 수확, 가공과 로스팅, 추출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커피를 처음 마실 때 우리는 잔을 본다. 조금 더 공부하면 원두를 보고, 더 깊이 들어가면 생두를 본다. 그리고 마침내 생두 너머에 있는 커피나무와 농장, 그곳의 사람과 자연을 보게 된다.
그때 한 잔의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한 해의 계절이 되며, 어느 지역의 기후와 농부의 노동이 된다.
“바리스타는 로스터가 되고 싶고, 로스터는 커피 농장주가 되고 싶어 한다.”
이 말은 직업의 서열을 말하는 문장이 아니다. 커피를 사랑할수록 그 시작을 알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커피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
글쓴이 김경민은 시흥 세계커피콩축제 감독으로,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 세계커피연구소장, 아마츄어작업실 대표 등을 맡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커피학 석사를 받았다. 논문으로 「미니멀리즘 커피연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