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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커피칼럼] 커피는 다시 실험적이어야 한다

※ 본 칼럼은 제4회 세계커피콩축제를 기념해 기획된 연재 시리즈입니다.

[글: 김경민] 이상과 제비다방으로 읽는 현대커피의 다음 길


1933년,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열었다. 건축을 전공했던 그는 문학뿐 아니라 미술과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시에 숫자와 기호, 독특한 활자 배열을 끌어들이며 당시의 문학적 관습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대표작 《오감도》가 보여주듯 이상에게 문학은 이미 만들어진 형식 안에 생각을 담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시’라는 그릇 자체를 의심하고 다시 설계하려 했다.

제비다방이라는 실험

이러한 이상의 태도로 제비다방을 바라보면 이 공간 역시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제비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영업장이 아니었다. 문인과 예술가들이 찾아와 만나고 대화하며 새로운 생각을 교환하던 공간이었다. 이상이 작품 속에서 언어의 형식을 실험했다면, 제비다방에서는 사람과 예술, 도시가 만나는 공간의 가능성을 실험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다방의 역사에서도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초기의 다방은 커피를 마시는 장소인 동시에 문인과 예술가, 지식인들이 교류하는 문화공간이었다. 이후 음악다방이 등장했고,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다방과 카페의 역할도 변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다방사는 단순히 어떤 커피를 마셨는가에 관한 역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커피를 사이에 두고 무엇을 생각하고, 만나고, 만들어왔는가에 관한 문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스페셜티의 시작도 실험이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늘날의 스페셜티커피를 생각한다.

스페셜티커피 역시 처음에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었다. 커피를 단순히 쓰고 진한 음료로 바라보는 대신, 산지와 농장, 품종과 가공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농산물로 읽기 시작했다. 로스팅은 단순히 생두를 볶는 기술을 넘어 재료의 특성을 표현하는 과정으로 발전했고, 센서리와 추출에 대한 연구는 한 잔 안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도록 만들었다.

스페셜티커피는 새로운 커피 한 종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커피를 바라보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혁신이 관습이 되는 순간

그러나 모든 성공한 실험에는 역설이 있다. 처음에는 기존의 관습에 도전했던 새로운 방식도 많은 사람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 다시 하나의 표준이 된다. 새로운 로스팅이 정답처럼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추출법은 곧 복제 가능한 레시피가 된다. 어느 카페가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면 비슷한 인테리어와 메뉴, 음악과 서비스가 빠르게 반복된다.

어제의 혁신이 오늘의 관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스페셜티커피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기존 커피의 관습을 깨뜨렸던 스페셜티커피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관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스페셜티커피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페셜티커피가 처음 가지고 있었던 실험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질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커피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좋은 생두를 구하고 정밀하게 로스팅하며 추출 변수를 관리하는 능력도 빠르게 높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을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한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새로운 경험과 문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상의 실험주의가 다시 의미를 갖는다.

이상은 기존의 시를 조금 더 잘 쓰려고 하지 않았다.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숫자와 기호를 시로 끌어들이고 건축과 미술의 감각을 문학에 결합한 것도 기존의 문법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한 실험이었다.

커피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현대커피에도 이제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새로운 메뉴 하나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커피를 경험하는 방법 자체를 바꾸는 것은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일이다. 커피와 미술의 결합이 단순히 카페 벽에 그림을 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맛과 시각 경험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커피와 음악의 관계를 감각의 문제로 연구할 수도 있다. 카페는 단순한 소비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지식과 예술, 지역과 문화를 경험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낯선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실험적인 커피와 괴상한 커피는 다르다. 실험은 새로워 보이기 위해 벌이는 이벤트가 아니라, 기존의 방식으로는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새로움은 목적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끝까지 따라간 결과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비다방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1930년대의 인테리어와 음악을 재현한다고 해서 이상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제비다방에서 다시 발견해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이 아니라 그 형식을 만들어냈던 태도다.

스페셜티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가능하게 했던 질문과 실험의 정신이다.

현대커피에 필요한 것은 ‘이상의 커피’가 아니다. 이상의 실험정신이다.

이상은 시가 무엇인지 하나의 정답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진 언어와 건축, 미술과 과학을 넘나들며 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이제 우리도 좋은 커피의 정답을 반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커피를 조금 더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커피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상상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제비다방 이후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 커피가 이상에게서 다시 배워야 할 가장 현대적인 태도일 것이다.

글쓴이 김경민은 시흥 세계커피콩축제 감독으로, 신안산대학교 호텔제과제빵과 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 세계커피연구소 소장, 아마츄어작업실 대표 등을 맡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커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미니멀리즘 커피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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