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타임즈=박경애 문화예술전문기자] 목감아트하우스27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사람 소리가 들린다. 주말 오후에는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앉고, 평일 저녁이면 어른들을 위한 강의가 이어진다. 직원들은 그 사이를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오간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의 풍경이 아니다. 이곳의 평범한 하루다.
정작 건물 외관은 30여 년 전 그대로다. 1991년 준공돼 오랫동안 목감동 행정복지센터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2년 문화예술공간으로 문을 열었지만, 밖에서 보면 여전히 동사무소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직원들은 유리문에 포스터를 붙이고 대관 현황판을 세우며 쉴 새 없이 짧은 영상을 찍어 올린다. 이 오래된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빠져나간 인프라, 그러나 되돌아온 발길
목감아트하우스27이 놓인 자리는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길 건너 신도시에 어울림센터가 들어섰고 도서관과 복지시설, 상업시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는 어울림센터가 하나 더 들어서며 미디어아트홀과 어린이·어르신 시설까지 신도시 쪽으로 모였다. 개관 초기 이곳을 문화 거점으로 만들려던 시도가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던 이유다.
담당 곽민경 주무관은 오히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다. 쾌적하고 다양한 신도시의 새 시설들과 비교해 30년 된 이곳이 시설 면에서 내세울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신도시 주민들이 주로 찾아오던 프로그램에 이제는 구도심과 신도시 주민이 거의 절반씩 참여한다. 신도시에서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찾아 일부러 이곳까지 건너오는 것이다.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것은 규모가 아니라 ‘촘촘함’이었다. 기존에 없던 유아 프로그램을 열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생겼고, 지금은 영아부터 어르신까지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용자도 해마다 30%가량 늘고 있다.

내 일처럼 뛴 사람들
이 변화의 동력에는 실무자들의 주인의식이 있었다.
연간 6회의 하우스콘서트와 상·하반기 교육 프로그램, 매주 토요일 영화 상영이 쉼 없이 이어진다. 밖에서 보면 몇 배의 예산을 쓰는 것처럼 보일 만큼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만 실제 예산은 넉넉하지 않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실무자들이 해마다 한 건씩 따낸 국고 공모사업이었다.
공모사업은 본래 맡겨진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청서를 쓰고 심사를 거쳐 사업을 실행한 뒤 정산까지 챙겨야 한다. 일이 줄줄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매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이유는 참여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이 공간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기 때문이다. 손발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업이 몰리면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지지만, 그렇게 채워진 하루가 다시 다음 도전으로 이어진다.
곽 주무관은 그 보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업이나 공연에 오신 분들이 좋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여기서 못 해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걸 해보려고 매년 공모사업에 도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로’ 사업, 202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꿈다락 문화예술학교’를 잇달아 수행하며 쌓은 경험과 신뢰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 ‘길 위의 인문학’과 ‘지혜학교’ 선정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이곳이 수행한 국고사업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사업이 하나씩 쌓이는 동안 달라진 것은 실적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이 공간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동사무소이던 시절에는 볼일이 있는 사람만 문을 열었다면, 이제는 주민들이 마실 나오듯 편하게 들른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목감아트하우스27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공간이겠느냐고 묻자 곽 주무관은 ‘문화 사랑방’이라는 말을 꺼냈다. 언제 와도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예전보다 “이곳에서 정말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온기가 좀 채워진 느낌이요.”
숲과 음악으로 짜인 올해의 프로그램
올해 진행 중인 ‘길 위의 인문학’은 목감동의 숲을 무대로 삼았다.
‘숲 쏙 예술’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의 숲, 어른의 숲, 부모의 숲, 가족의 숲으로 이어지며 아동부터 노년까지 전 생애주기를 아우른다. 연극과 시각예술, 음악을 매개로 ‘나’에서 출발해 ‘시간’을 돌아보고 ‘너’를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으로 구성됐다.

9월부터 시작되는 심화 과정 ‘시절 쏙 음악’은 사라져가는 공간과 시절의 기억을 음악으로 되짚는다. 장소의 기억에서 소리의 기억으로, 다시 평범한 하루의 사운드트랙과 노랫말 창작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돼 11월까지 진행된다.
시흥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목감아트하우스27에서 열린다.
행정·예술단체·대학이 한자리에
눈여겨볼 지점은 이 사업이 운영되는 구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도서관협회가 주최·주관하고 시흥시가 사업 전반을 맡아 추진한다. 여기에 전문 예술교육 기획단체가 협력기관으로 참여해 콘텐츠를 함께 설계하고, 경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을 전공하는 예비 문화예술교육사들이 현장 실습으로 합류했다.
지자체와 민간 예술단체의 협력에 대학까지 더해진 사례다.
실습에 참여한 예비 문화예술교육사들은 오랜 교육 경력을 지닌 현장 교사들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 문화예술 사업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이야기지, 문화예술 사업을 어떻게 꾸리는지는 아니거든요. 늘 막연했는데 여기 와서야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 이런 거구나 알게 됐어요.”
— 성정은 예비 문화예술교육사
“이론을 홍삼 엑기스처럼 압축해놓은 곳 같았어요. 짧은 시간에 한자리에서 다 겪어볼 수 있으니까요. 오래된 건물을 이렇게 되살려 쓴다는 점에도 200% 공감합니다. 게다가 숲까지 곁에 있으니까요.”
— 박관영 예비 문화예술교육사

배움도 공간도 좋았지만 두 사람이 끝내 꼽은 것은 ‘사람’이었다. 직원들이 제 일처럼 빈자리를 메우는 모습을 보며 그 태도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구조를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 문화공감이음 채수진 대표는 이를 ‘상생’이라고 표현했다. 문화예술교육 분야는 예비 인력이 실제 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부족한 만큼, 학교가 인재를 기르고 기관이 현장을 열어주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그 결실은 결국 지역에 남는다는 것이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구도심에서 빠져나간 것들의 목록은 앞으로도 길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목감아트하우스27은 떠나간 것을 세는 대신 이곳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헤아리는 쪽을 택했다.
건물을 둘러싼 숲과 오래된 골목의 기억, 그리고 서로의 빈틈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새 건물은 예산으로 지을 수 있지만,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예산만으로 만들 수 없다.
동사무소였던 이 건물의 외관은 30여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그 문을 여는 사람들과 그 안을 채우는 온기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든 것은 결국 이곳을 제 일처럼 여긴 사람들이었다.
목감동의 ‘문화 사랑방’은 그렇게 오늘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