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홍성인 기자) “나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것에 인정을 받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장애인 복지에 몸담은 만큼 앞으로도 사회복지사업에서 장애인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바꿀 생각은 없다.”
윤형영(56‧사진) 사단법인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회장, 희망나누리 이사장이 장애인에 대한 복지향상과 장애인의 자립과 권익을 위해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受勳)했다. 시흥지역 내의 사회복지기관 운영자로써는 최초의 일이다. 36년째 장애인복지에만 힘써왔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윤형영 회장은 1980년 서울맹학교와 서울농아학교(선희학교)에서의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36년간 무의탁 장애인 및 중증장애인을 돌보며 장애인 선교(복지)를 힘써왔다. 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였고,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2003년 버려진 장애아동을 입양해 돌보는 등 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왔다.
시흥의 소리는 윤 대표를 만나기 위해 시흥시 장애인거주시설인 ‘비전하우스’(시흥시 군자동 소재)를 찾았다.
윤 회장이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 시국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국가의 존망 자체가 흔들렸던 시기였고, 대학생들이 희망을 못보고 거리로 뛰쳐나올 시기였다. 내가 79학번이라서 당시 상황의 중심에 있었다. 학생운동도 당연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우연찮게 서울맹학교와 서울농아학교(선희학교)에서의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나에게 위안이 되더라. 모든 편견이 깨지고 봉사활동에 매료가 됐다.”
그는 자원봉사로 시작해 사회복지기관의 평직원, 국장 등을 순서대로 거치며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키웠다. 특히, 그는 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여유가 닿는 대로 읽을 만큼 열정을 보였다.
“아마 시흥시 내에 장애인에 관련된 전공서적은 이 곳만큼 있는 곳이 없을 것이다. 솔직히, 전에 안양에서 근무하다가 시흥으로 오면서 기증할까 하다가 우선 우리 시설직원부터 공부시키자는 생각에 이 곳에 두었다. 그동안 몇몇 서적은 버리고, 정리하고 그러면서 1천여 권 정도 남았는데 적절한 시기에 시흥시에 기증할까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전공서적은 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수록돼 있다. 왠만한 장애인 복지관련 지식은 책을 통해 습득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그가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실무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이론도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솔직히 장애인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 중에 전문가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때는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고력도 분명 필요하다. 아마 책이 그러한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윤 회장이 장애인 복지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을까. 그는 이 질문에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다. 어려움 자체가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이 있다면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즐거움과 힘든 날 생각하기 나름이지 삶의 무게는 똑같다. 고비를 넘기면 즐거움이 있고, 이런 것들의 반복이 삶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고비를 넘기면 이번에도 넘겼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서로 다를 뿐이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도 살아가면서 삶의 무게가 있듯이 장애인도 살아가면서 삶의 무게는 있기 마련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그가 이러한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 종교적 신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5년 전 장애인거주시설 ‘비전하우스’에 오면서 작은 다짐을 했다. 시설의 운영자로써 제대로 된 모두가 만족하는 시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였다. 처음 시설에 왔을 때 상황이 녹록하진 않았지만 차츰 개선해 나갔고, 이제는 운영자, 직원 모두 행복한 곳에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그동안 겪은 사회복지에 대한 노하우는 대학 강단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사실 사회복지 쪽 사업은 용어부터가 생소하다. 하지만,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재미있어 한다. 학생들에게 책에 있는 내용은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고, 실제 강의시간에는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물론 큰 줄기는 책에 있는 내용이지만 학생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전수하고 싶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할 것을 권장한다. 아무 관련이 없는 질문이라도 그는 자유스럽게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학생이라는 특권이기에 그런 질문이 가능한 것이고, 그런 것에 소극적인 것은 그 특권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솔직히 요즘 장애인에 관심 있는 사람 흔치 않다. 그렇기에 더 사명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부터가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관련 분야에 어떠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종교인으로써의 사명이 이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윤 회장은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이래 지난 36년간 ‘누군가 손 내밀면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제자들과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성실히 살아온 것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또, 겸손해지고, 섬기는 모습은 체질적으로 베어 있다. 편견을 깨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사는 모습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다.”
그는 시흥시 장애인 관련 기관들이 현장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복지의 어른으로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이 없으면 아우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시흥에 온 이상 어떤 것이던 대충할 생각은 없다. 지역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후배들이 왔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모습으로 지역 사회복지의 진정한 일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