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손엔 “일제불매” 라는 피켓이 들려있었다. 지난 7월 뜨거운 여름날 시작된 ‘일제불매’ 운동은 어느덧 100일을 넘겼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계속 이어졌던 일제불매 운동.
거리에 나와 “일제불매”를 목이 터져라 외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깨어있는시민실천연대를 주축으로 한 시민들은 지난 7월 4일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를 단행하자 4일 뒤인 8일부터 본격적으로 일제불매운동에 나섰다.
당시 시흥 센트럴병원 영상의학팀의 정범래 팀장이 불매운동에 화살을 당겼고, 깨어있는시민실천연대와 지역 주민들이 이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정부는 국민들을 믿고 당당히 일본에 맞서라” 고 외쳤다. 이후 운동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해 차량과 스마트폰에 붙이도록 만든 일제불매 스티커는 현재까지 6천여장 넘게 시민들에게 나누어졌다.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무더위에 피켓을 들고 서있으면 음료를 사다주며 “힘내시라”는 격려가 이어졌고 지역주민도 한명씩 나와 릴레이로 피켓을 들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깨어있는시민실천연대 김봉호 대표는 불매 운동 초기 “전단지를 돌리시던 쇠약한 할머니께서 일제불매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 면서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에 동참해온 배곧동 류호경 주민자치위원장도 “독립운동은 못했을망정,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불매운동은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지역주민들과 운동에 참여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몇 몇 사람이 모여 일제불매를 외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일제불매 운동은 예상외의 파급력을 미쳤고, 국민들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와 기업은 이런 국민들을 보며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베정부 역시 이런 한국 국민들의 대응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의류매장은 불매운동의 여파로 철수 결정이 내려졌다. 또 수입차 판매 역시 1년전과 비교해 90%가까이 급감했다.
일본여행자제로 이어진 일제불매 운동으로 일본은 휴가철 여행관련 피해액이 한국의 9배에 달하는 약 3500억원 가량의 생산유발액이 줄어들었다. 이에 일본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피해를 호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몇 사람이 참여한 일제 불매운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더위와 장마를 이겨내고 찬바람이 부는 날까지 꿋꿋이 불매운동에 나선 이들이 있었기에 이 같은 결과가 나왔으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배곧동 상인 A씨는 “매일 거리에 서서 피켓을 들고 스티커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잊었던 경각심도 느끼지만 저렇게 나서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미안함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한국 국민들을 한참 잘못 본 것”이라고 일침 했다.
어느덧 100일을 넘긴 일제불매운동, “언제까지 이 운동을 이어갈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깨어있는시민실천연대 김봉호 대표는 “일본이 사죄 하고 경제보복을 철회하는 그날까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는 국민들을 믿고 당당히 일본에 맞서라”며 거리에 나선 그들이 있었기에 정부도, 국민도 실로 당당할 수 있었다.
시흥시에서 본격적으로 일제불매운동이 일어난지 100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거리로 나선 현대판 '독립투사' 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