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준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주거복지 로드맵에 청년과 신혼부부, 노인은 포함되어 있지만 아동은 빠져있습니다. 보고서를 만드는 동안 연구원들도 정왕지역의 상황을 보고 (심적으로)힘들어 했습니다.”
11일 열린 정왕지역 아동주거 실태조사의 결과보고를 맡은 한국 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은 그렇지 않다” 면서 “(정왕지역 아동주거빈곤이) 고시원보다 열악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7년 아동주거빈곤에 대한 첫 문제 제기와 토론회가 있었고, 실태조사를 거쳐 개최된 이날 결과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첫 문제 제기 이후,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현실은 아직도 답답하다.
정왕지역 아동주거빈곤, “모든 것이 최악”
정왕지역 아동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당지역(정왕본, 1동, 3동) 내 아동이 거주하는 다가구 주택들은 좁은 주거면적과 불량한 위생상태, 안전사고 위험, 범죄 피해 위험 등 아동이 거주하기 위한 모든 면에서 최악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2010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정왕본동이 아동 주거빈곤 전국 1위(69.4%)라는 부끄러운 사실은 여전하다.
“좁은 주거면적”
아동 주거빈곤이 심각한 이유 중 하나는 불법적 내부 구조 변경에 따른 방 쪼개기가 한몫하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상 다가구주택은 1필지에 6가구 이하가 들어서게 되어 있지만, 현재는 약 15~18 원룸으로 불법 개조된 상태다.
이렇게 쪼개진 방에 거주하는 이들은 주거면적 40㎡ 미만인 가구 비율(52.3%)이 가장 높았고 방수도 2개가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가구에 있어서 가장 큰 주거복지 소요는 ‘아동의 방 분리’지만, 딸과 아빠, 성별이 다른 형제가 한방에 함께 생활하는 실정이다.
집이 좁아서 빨래 건조대 밑에서 자야하는데 빨래랑 건조대에 부딪혀서 불편해요. 엄마가 요리할 때 뭐 좀 도와드리려고 해도 주방이 좁아서 불편하고요. 화장실은 겨울에 춥고 뜨거운 물이 나왔다 안나왔다 하고요. 겨울에 추워서 이불을 많이 덮고 자요. 방이 2개여서 아빠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 -3자녀 김○○-
비좁은 단칸방에 온 가족이 거주하다 보니 부엌시설은 부족하고, 아동을 위한 공간은 없다.
여기에 거주하는 이들의 주거환경 만족도도 매우 낮은 편이다. 5점을 척도로 평가한 조사에서 정왕지역 아동이 있는 가구는 3점미만으로 나타나 살만한 집이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량한 위생 상태”
차라리 상품권 대신 바퀴벌레 약을 사다드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심각해요. 바퀴벌레가 없는 집이 없어요. 한 집만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방역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바퀴벌레가 너무 많다고 계속 이야기해요. 하수구를 통해 쥐가 들어오기도 한대요. -조사원 간담회 이○○ 조사원
작게 집을 쪼개다 보니 창문이 작아 채광이 잘 되지 않고, 집 안에 냄새나 습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 집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인지 집 내부에 바퀴벌레 등 해충이 수시로 나와 아이들은 자주 고통을 호소하고도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감기, 천식 등 호흡기 질환과 피부 질환, 알레르기 반응 등을 계속 보이기도 한다.
실제 설문조사원이 가구를 방문했을 당시 방 내부에 바퀴벌레가 많아 조사하는 중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건물이나 지역 전체를 관리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해충의 특성 상 지역 전체에 방역이 시급한 실정이다.
“안전사고 위험”
주택 내 시설이 망가져도 임대인이 수리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아동이 다친 경험이 있는 가구가 있고, 집이 좁아 별도의 수납공간이 없이 물건이 바닥에 방치되어 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문은 가라앉고 유리는 깨졌는데 돈이 없어서 테이프로 막아놨어요. 작년에는 애기를 욕조에서 씻다가 옆에 있던 세면기가 떨어져서 애들이 다쳤어요. 애가 샤워꼭지를 내렸는데 그 세면대 자체가 툭 떨어져 버린 거예요. 그런 것도 다 저희 책임이 되는 거예요. -한부모 2자녀 수급가구 이○○
다가구주택이 밀집하다보니 주차문제는 늘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보행로와 주차공간은 별도의 구분이 없다. 가장 안전해야할 통학로의 안전은 확보되지 않아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밤길은 어둡고, 어두운 환경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설문 결과 동네에 가장 필요한 시설은 ‘신호등, 가로등, CCTV 등 안전시설(61.4%)’ 이라고 답했다.
“범죄 피해 위험”
방범창이 제대로 없거나, 창문이나 출입문이 닫히지 않는 주택도 있다. 또 술집이나 식당 등 상업시설의 밀집, 어두운 주택가, 이주민이 모여 술을 마시는 공원 등이 아이들에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로 성범죄 수배자가 아동에게 접근한 경험이 있는 가구도 있다.
얼마 전에 성범죄자가 우리 아이에게 접근한 적이 있어요. 아이가 친구들과 문구점 앞에서 함께 있을 때 어떤 모르는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다가오면서 어깨를 만지더라고요. 제가 다행히 근처에 있어서 그 장면을 봤는데, ‘뭐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냥 ‘죄송하다’며 떠나더라고요. 아무래도 수상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성범죄 관련 수배자였던 거예요. -2자녀 이○○ 보호자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정서적 불안과 사회성 저하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부모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동의 정서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서는 판단했다.
“그렇다면, 주거복지 정책 어떠한가.”
정부는 2017년 아동주거빈곤이라는 문제가 제기 된 이후 새로운 주거복지로드맵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아동 가구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여기엔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강화 대책도 있는데 아동주거빈곤 가구 중 수급가구이거나 수급가구에 포함될 가구는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이주 장벽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경기도의회도 당시 도의원이었던 임병택 현 시흥시장이 대표발의 했던 ‘경기도 주거기본 조례’를 2018년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엔 아동주거빈곤 개념을 신설했고, 빈곤 아동이 거주하는 노후한 주택을 개.보수 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시흥시의 주거복지 정책도 변화가 있었다. 2019년 1월 시행한 '시흥형 아동주거비 추가지원사업'은 중위소득 60% 이하의 시흥형 주거비 지원 대상자 중 아동이 있는 가구의 경우, 아동 1인당 주거비의 30%씩을 가산 지급해줘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있음에도 현실은 팍팍하다. 소득수준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주거비는 오히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방이 한개 더 있는 주택으로 옮겨 갈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한다.
이에 대해 한국 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의 부재"를 문제로 꼽았다.
최 소장은 “안산의 경우 약 4000채의 매입임대주택이 있지만 시흥의 경우엔 200여채에 불과 하다면서 LH나 경기도시공사 같은 기관이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흥에선 2000호 정도의 매입임대주택이 필요하고 방 쪼개기와 같은 불법 사안을 강력히 단속,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보고회에 참석한 지역 단체의 어려움도 전해졌다. 송주법에 의해 만들어진 큰솔송주협동조합 김창수 이사장은 “정부 보상금으로 건물을 매입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꾸미려고 하니 지구단위계획 등 법적 규제로 인해 건물을 리모델링할 수 없는 상태” 라며 “갈 곳없는 열악한 동네의 아이들을 위해 개선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시흥시와 LH, 국토부 관계자 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개선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담당 국장은 “제기된 문제들의 방안을찾을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 며 “우선 방역과 관련해선 3천만원의 예산이 추경에서 세워진 만큼 방역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LH 관계자 역시 “현재 시흥지역 20동 226세대에 불과한 매입임대주택을 올해엔 50동까지 늘려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왕지역 아동주거 실태조사 최종보고회를 가진 '정왕지역 아동주거환경개선 네트워크'는 이 지역의 아동주거빈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민·관 20여개 단체가 참여해 지난 2017년 토론회를 시작으로 아동주거실태조사 연구 등을 거쳐 올해 최종보고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