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시흥시 검토협회장을 맡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지역 사람들은 조금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검도라는 체육 종목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그 단체를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가 협회장을 역임한 1년 동안 어수선했던 시흥시 검도협회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이제는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 이야기는 바로 제10대 시흥시 검도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환기 회장(50)의 이야기다.
2012년 초 그가 시흥시 검도협회장을 맡기 전까지 검도협회는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검도협회장으로 나서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웠다.
시흥시 내의 검도 관계자들은 새로운 수장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선뜻 나서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다.
김환기 회장 역시 당시에 협회장직 제의를 받고 수차례에 걸쳐 고사 의사를 비췄다. 당시 지역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라 검도협회장이라는 새로운 과업을 맡기에는 이래저래 부담이 따랐다.
그럼에도 검도 관계자들은 김 회장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각종 단체에서 보여준 실무적인 능력을 토대로 검도협회의 어수선함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김 회장은 지속적인 요청에 시흥시 검도협회에 대한 생각을 돌리게 됐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 등을 구한 후 검도협회장직을 수락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협회에 대한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협회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지역 내 검도인도 역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협회활동 활성화에 공을 기울였다.
30여 명에 이르는 이사회 구성도 이런 부분과 맞물려 진행됐다. 과거에는 없었던 이사진들의 정례회 역시 이제는 매월 열려 시흥시의 검도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높았다. 집안 식구들이 상당수 전문 체육인으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 등에 관심이 높았고, 생활 체육 등은 구경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가 '검도 협회장'을 수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살고 있는 '시흥'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20여 년 전 시흥에서 정착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처음 이 곳에 와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10년 넘게 고생을 했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지역 사회를 둘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면 삶의 안정을 가져다 준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필요도 있다고 본다. 시흥은 나에게 바로 그런 곳이다."
정왕 2동 바르게살기위원회 위원장부터 시작한 지역 내 활동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또한, 이와 함께 조금씩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던 것도 다양해져 갔다.
한울타리봉사단 부단장부터 정왕복지관과 시흥시지체장애인에 매월 정기후원을 하고 있고, 능곡동 노인복지관에도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 중 상당수는 김 회장 개인의 사비로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성장하면서 봉사라는 것에도 매력을 느끼게 됐다. 봉사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닌 내 조그만 도움이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다른 데 조금만 덜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기부다."
다시 검도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는 무엇보다 현재 시흥시 '검도'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초등학교의 검도부 창설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관내 학교 중 검도부가 있는 학교는 은행중, 장곡중, 장곡고등학교다. 초등학교는 아직까지 검도부가 있는 학교가 없다. 원활한 학원 스포츠 육성을 위해서는 초등학교의 검도부 창설이 시급하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 관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검도부 창설을 위한 미팅을 수시로 갖고 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학교가 나타나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한다.
시흥시교육지원청도 검도부를 창설하는 초등학교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학교 측의 반응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는 몇몇 초등학교가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창설하겠다고 나서는 학교가 있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검도협회장을 맡을 당시 지역에서 바라보는 안 좋은 시선이 조금은 가슴 아픈 기억이 되기도 했다.
"사실 검도협회장직은 명예직에 가깝다. 협회장에게 금전적인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스포츠를 사랑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는 일인데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아쉬웠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느 정도 안정된 협회 행정과 지역 검도인들의 다양한 성과들도 그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주고 있다.
최근 그는 경기도 체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관광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열린 전국체전의 원활한 진행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전국 단위 체육행사를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흥시 검도협회는 또 다른 성장을 한 것이다.
그는 하루 평균 4~5시간 정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들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활동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하루 일과 안에서도 다양한 부분을 소화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생긴다고 전했다.
그 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다.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아내, 그리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가끔 아내가 "얼굴보기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는 할 말이 없어진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 활동도 규칙적이고 안정화 되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려갈 생각이다. 그동안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뒤에서 적극적으로 이해해준 아내한테 제일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다시 가정적인 남자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멋쩍게 웃는다.
그에게 있어 시흥이라는 도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시흥 토박이도 아님에도 시흥시에 대한 애정이 인터뷰 내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다들 제2의 고향이니 그런 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표현하지 않는가. 나에겐 그 이상으로 시흥이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면 거짓말일까?"
어느 누구보다도 시흥을 사랑해 지역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는 그의 모습이 더 든든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