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경민] 필자는 유학시절 “나는 대한민국의 ‘정책벌레’가 되어 선진 정책을 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방학 때마다 여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정책보좌 인턴을 하며 정책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똑똑한 정치인들, 정책에 대한 거시적ㆍ미시적 정립이 되어 있던 훌륭한 분들이었다. 이제 나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이 연락을 할 정도로 인격적으로도 멋진 분들이다.
그 당시 정치서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는데(의원실로 오는 신간 정치서들은 내 소유였다) 멈추지 않고 몰입해 읽었던 책이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 였다. 현대정치사의 에피소드들은 강준만 교수의 위트와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즐겁게 전달되었다.
책에 언급된 사례 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에 대한 글이 있었다. 2005년 동료 의원이 옳은 소리를 하는 유시민에 대해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말했다 한다.
이 멘트를 자세히 보면 싸가지 없는 말 = 옳은 말 이란 공식이 성립된다. 그럼 소위 ‘싸가지 없다’는 사람은 옳은 소리 하는 인격체인 것이다.
최근 들어 여러 청년정치인들, 청년예술인들을 만나 대화하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내년도 경기도세계커피콩축제와 은계호수공원 문화예술사업과 관련해 조언과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공통된 말을 듣게 되었다. 청년을 대변하는 그들이 본인들이 속해 있는 집단과 사회에서 상식적인 비판을 하면 기성세대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말을 돌려 듣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회가 이념과 이념으로 분리되어 중간으로 더 중간으로 타협 해가는 사회로 인식해 왔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불법과 편법으로 이득을 사유화한 일부 ‘꼰대들’과 그들의 사유화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싸가지 없는(옳은 소리하는) 청년들’ 사이 갈등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예술인들에 의하면 늘 청년이 화두가 되지만 기성세대로부터 떡고물이나 받고 떨어지라는 게 그들이 처한 상황이라 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용돈 주듯 하는 생색이 아닌, 그들이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다.
필자는 올해 초 마을교육자치사업과 관련해 한 포럼에 참석해 우수사례를 듣게 되었다. 정확한 행정동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비까지 받은 정말 훌륭한 사례였다.
그 교육사업의 주최였던 해당 행정동의 나이 지긋한 여성 주민자치회장이 나와 발표를 했는데 그때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는 여기 계신 훌륭한 분들처럼 교육받지 못해 무식합니다. 그래서 똑똑하게 말을 잘 못합니다. 제 말주변이 부족해도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지역이 낙후되어 학교도 아이들도 별로 없어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을 위해 마을주민들과 이 교육사업을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했습니다..." 대략 이런 발표였다.
그 진심이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 회장님이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가지셨는지 동네 주민들 수십명이 플랜카드를 펴고 응원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런 게 진정성이고 '겸손' 아닐까 생각했다.
기성세대도 이런 분이 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하게 만드는 그런 성숙한 인격이 있다.
종합해 보면 ‘싸가지 없다’고 치부하는 일부 집단의 그런 행동은 결국 자격지심 심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 꼰대들의 방어기제다. 그들이 말하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청년세대와 상식적인 사람들은 ‘싸가지 없다’ 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의 상식일 뿐이다.
지금 청년 세대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기 위해 헌신했던 노병은 절대 죽지 않는다. 우리들의 마음 한 켠에 존경의 대상으로 살아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그러나 꼰대들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팔고 있다.
옳은 말을 하는 게, 상식을 말하는 게 싸가지 없는 것이라면, 청년들이여 싸가지를 마음껏 팔아라!
글쓴이 :김경민은 현 아마츄어작업실 대표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커피학석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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