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봉사활동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어렵게 다가왔다. 일반인들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인지하기 힘들었고, 대상 또한 한정돼 있다는 생각들을 하기 쉬웠다.
하지만 최근 봉사활동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넓게 퍼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이웃들에게 베푸는 모습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제1회 시흥일보 시민대상 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정임[52·거모동] 씨는 미용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情]을 퍼뜨리고 있다.
그가 미용을 통해 봉사활동을 펼친 지도 벌써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그가 다닌 곳은 주민자치센터, 경로당, 양로원, 보건소, 복지관 등 자신의 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시흥시에 거주하면서부터 이러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어릴 때부터 가진 신념 때문.
항상 자신의 손이 필요한 곳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신념이 현재까지 사회에서 소금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이정임 씨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받을 자격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남들이 알아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손사레를 쳤다.
봉사활동의 종류 중 미용분야에 접근한 이유에 대해서는 "젊었을 때 배운 기술을 썩히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애둘러 표현했다.
그가 주민자치센터, 어르신복지관 등 시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각 가정을 찾아다니는 가가호호 미용봉사활동도 벌이고 있었다.
"솔직히 요즘에는 어깨가 아파서 예전처럼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지 못한다. 마음은 더 많은 사람들의 미용을 봐 드리고 싶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아 안타깝다."
그가 지난 18년 동안 미용을 봐 준 사람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의 봉사활동을 하고 하루 평균 5~10시간 정도의 봉사 활동을 하면 일일 10~20명의 사람들의 머리를 손 볼 수 있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수 천 명이 그의 손길을 거쳐갔다.
특별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실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이가 들 텐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미 이야기했던 대로 그는 잦은 미용봉사로 인해 어깨 상태가 좋지 못하다.
수시로 한의원과 정형외과에서 침 시술과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한의원과 정형외과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용봉사를 수행하고 있다.
가가호호 봉사활동이 어느 정도 알려지자 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깨 상태로 인해 예전만큼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태가 호전되면 어김없이 자신의 손길을 원하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 자신의 아픔보다 남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요양병원 같은 데 가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이 자신이 찾아올 때 마다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럴 때면 더 힘내서 미용활동을 하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갔을 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특히,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생각보다 일찍 여의게 되자 봉사활동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부모같은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초기에 자신의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했던 그였지만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무리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렇게 대화를 어느 정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봉사활동의 영향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머리를 다듬고 하는 시간에는 둘만의 시간이 지속되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다.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내 성격 역시 과거보다는 외향적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
현재 가가호호 미용봉사 활동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7~8명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거모동 지역이지만 시흥시 관내에선 위치를 가리지 않고 다닌다.
이야기 도중 그는 한 가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나름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봉사활동이지만 시흥시의 특성상 자가용이 없으면 봉사활동을 다니기가 어렵다. 요청하는 곳은 많지만 이런 저런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지자체처럼 요청하는 봉사활동에는 자체 기준을 마련해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한 예로 정왕본동주민자치센터를 예로 들며 식사제공 같은 것은 없지만 활동 후 11,000원 정도의 경비를 지급하는 데 이런 사례들이 활성화된다면 봉사자들이 부담을 어느 정도 덜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주변에서 아픈데도 봉사활동을 우직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을 벌이는 데 이유가 있겠느냐. 내가 보기엔 숙명과 같은 일이 아닐까 한다."
오랜 봉사활동으로 인해 그의 몸은 완전치 않다. 하지만 그가 봉사활동을 멈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처음에는 자신이 배운 기술을 썩히기 싫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어떤 생활보다도 봉사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내고 있었다.
그의 미용봉사활동은 그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활동일지 모르지만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