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청년과 사회를 연결하는 인터뷰, [청년-링크]
청년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한「청년기본법」이 2020년 2월 4일 제정되었다.
국가가 ‘취업을 원하는 자’를 청년으로 규정하던 시대에서 청년을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한 법이다. 「청년기본법」의 제정이 우리 시흥시 청년에게 더 뜻깊게 다가온 이유는 청년 당사자가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청구 방식으로 「시흥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했기 때문이다.
[청년-링크]는 시흥시 청년정책 발전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청년들의 삶의 서사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압축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청년’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당시로 돌아가 다시 ‘청년’들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이유는 사회절벽, 벼랑 끝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사회와 연결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금, 여기,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고자 함이다.
또한, 이를 통해 청년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조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우리 지역 안에서부터 다시 만들어보고자 한다. |
[시흥타임즈=글쓴이: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조은주]
2014년 당시, 시흥시는 경기도에서 3번째로 젊은 도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지역에는 청년이 없다.’는 인식이 공무원 사회에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청년이 없다.’는 말 앞단에는 ‘시정에 참여하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청년 시민’은 찾아보기 힘든 존재였다. 각종 시(市) 위원회, 협의체, 통반장, 주민자치회 등에 20대, 30대 청년은 없었다.
필자는 당시 ‘청년’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칭한다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하는 존재자로서 청년이 부정당했다는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이렇게 살아 숨 쉬며 살고 있는데, ‘청년 당사자’에게는 묻지 않고, ‘청년들이 보수화 되었다.’고 단정하거나, ‘청년들은 사회·정치에 무관심하다.’거나 ‘사회참여 활동을 꺼리거나 하기 싫어한다.’고 규정해버리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들이 이어졌다.
‘생계로 인해 권리를 쉽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절벽사회에서 청년이 이행의 과제를 뒤로하고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가?’, ‘청년들의 삶을 두고 참여의 장을 평가해보았을 때, 상식적으로 평일 낮 시간에 참여의 장을 연다고 했을 때, 참여가 가능한 청년은 몇이나 있겠는가?’
고구마 100개 먹은 기분이 들 때, 사이다를 먹는 것처럼 ‘존재자로서의 청년을 부정하는 시정’에게는 ‘청년 당사자’가 현존하며, 한 명의 시민으로 본인이 원할 때, 언제·어디에서든지 사회참여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르게 ‘더 이상의 존재의 부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정을 디자인하는 Social Artist’라는 콘셉으로 <시흥청년아티스트>를 2014년 11월 처음 구성하게 된다. 당시, 첫 시흥청년아티스트 대표로 선출되었던 김광수 청년활동가는 모두가 대표인 독특한 체계에서 구성원들이 활동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다양한 공익 활동을 전개하면서, 막상 청년들이 시정에 참여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법·제도와 정책이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였고, 「시흥시 청년기본조례」를 주민조례 제정 청구 방식으로 만들자는 결의를 하게 된다.
조례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앞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한 서울특별시의 사례 등을 학습하며, 청년의 권익 보장에 대한 내용이 담긴 「청년기본조례」가 무수히 많은 조례 중 하나로 ‘죽은 법·제도’가 되지 않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기로 한 시흥청년아티스트 10명의 활동가를 대표하여, 김광수 활동가가 조례 제정 청구 발안을 자청하게 된다.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 김광수 활동가(사진제공 : 조은주)
작년 8월 5일 「청년기본법」 이 시행되는데 있어, 시흥시를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청년정책을 사회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독 우리 지역을 회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청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 주민들에게 청년이 실존하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스스로의 권익을 증진시켜나갈 수 있는 토대를 함께 만들 것을 설득하며 무려 1만 4천 373명의 서명을 받아 제정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 세대도 아닌 MZ세대 청년들이 사회운동의 경험 없이, 당시 기준으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민감정보를 다 써서, 서명을 해주어야 인정이 되는 주민청구 방식으로 조례 제정을 성공시켰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조례를 주민청구로 제정한다는 것의 의미와 파급력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오롯이 청년들의 삶을 위한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본인의 일상을 포기하고 3개월이라는 서명운동 기간에 삶을 갈아 넣었던 청년활동가들을 다독이며, 청구인 대표 역할을 톡톡히 했던 김광수 청년활동가는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Q. 「시흥시 청년기본조례」를 주민조례 제정 청구 방식으로 대표 발의한 ‘시민’으로 조례 제정 전후의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솔직히 처음에 시작할 때는 조례 제정의 의미를 잘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지나오면서 느낀 점은 평소 한 명의 청년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쉽게 포기할 일들이 많았을 저인데요. 청년기본조례 제정 이후, 다양한 청년정책이 펼쳐지며, 청년들이 같은 사람과 다양한 지역의 자원들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 것 같아요.”
“청년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주변에 언제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삶의 위기 앞에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번아웃 될 때가 있잖아요. 그 때, 서로가 서로에게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게 버텨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되는 것처럼 조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청년정책이 청년의 삶의 안전망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또래 친구들과 지역 주민들과 삶의 공간에서 같이 무언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 글로만 봤었는데, 실제 진짜 같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청년, 시민, 시정이 다 같이 나서서 함께 「청년기본조례」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서 청년들이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제가 이행을 준비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Q. 「시흥시 청년기본조례」 제정 운동을 함께 했던 청년활동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같이 해서 너무 고마웠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전하고 싶어요. 우리가 같이 만든 것이라 더 기쁘고, 같이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같이의 가치’, 시흥청년아티스트 아자아자 파이팅!!”
▲주민청구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을 주도했던 10명의 시흥청년아티스트의 모습(제공 : 조은주)
Q. 본인에게 <청년기본조례>, <청년기본법>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약간, 랜덤박스 같습니다. 어떤 기회가 주어진 건데요. 거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주어진 기회가 있고, 청년 당사자가 앞장서고, 사회가 힘을 실어줘서 제정된 것이니까요.”
“요즘 많이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같이 삶과 일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지역에서 청년들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조례나 법이라는 것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사장 될 수도, 발현될 수도 있는 것이라서, 우리가 잘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법학을 전공한 본인에게 조례와 법을 제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법학도로서 「청년기본조례」,와 「청년기본법」이 청년들에게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기존 법들이 이 사회가 잘 운영되기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는 면이 있는데요. 「청년기본조례」,와 「청년기본법」은 제한되어 있던 것들을 오히려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준 느낌이예요. 여러 가지 사회에서 제한되고, 제약사항에 둘러 쌓여 있기 마련인데, ‘하지마, 하자마! 안돼!’가 아니라, ‘너희 그동안 못했지, 이제 한 번 해봐!’하고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함이 더 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Q. 작년 청와대에서 개최한 ‘제1회 청년의 날’ 기념행사에 초청받아서 참여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어떠셨나요?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우리의 활동이 역사에 크게 남았구나 싶었습니다. 조례가 만들어지고 이후 위원회, 협의체를 비롯해서 청년정책을 펼친 것의 그 결실을 보는 자리라서 뜻깊었습니다. 제가 대표로 가도 되나 싶기도 했고요.”
“누군가는 조례를 만들고,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누군가는 또 위원회와 협의체 등 심의기구, 참여기구에 참여하고, 정책을 만들고 이어나가며, 다 같이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해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작은 지역이라서 뭔가 메리트를 못 느낄 수 있는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활동한 것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것 같아 자랑스러웠습니다.”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청년들이 ‘생계로 인해 권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생존주의 경쟁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에서 어떤 불편부당한 사안에 대해 온전히 한 명의 시민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끝까지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길거리로 나와 ‘청년들을 위한 사회정책은 단순히 청년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사회 안전망과 보장체계를 넓히는 일’이라고, 본인이 발딛고 살아가는 지역에서부터 끊임없이 이야기 한 청년들이 있었기에 ‘청년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한 「청년기본법」’을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었다.
지난 4일은 「청년기본법」 시행 1주년 기념일이었다.
다시금, “우리 청년은 ‘실존’하는 ‘시민’입니다.”라는 청년들의 말에 사회와 국가가 되새겨 봐야 하는 시점이지 않을까.
▲인터뷰어(Interviewer) 조은주는 지역에서 청소년·청년 자치공동체를 표방하며 비영리민간단체를 설립·운영하였으며, 청소년 활동을 시작으로 시(市)의 청년정책의 시발점이 된 시흥청년아티스트를 구성하고 지원했다.
시흥시에서 청년정책 총괄 디렉터로 2014년 8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청년들을 위한 자치·자립·자생의 생태계’를 청년 당사자와 함께 만드는 역할을 담당했던 공무원(시간선택제 임기제)이었다. 현재는 「청년기본법」이 제정되고, 처음 구성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이자, 경기도일자리재단 청년일자리본부장을 맡고 있다. |